보도자료
열린마당 보도자료

  • [남도일보] 광주 3·1만세운동 도화선 ‘광주 제중원’

  •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3-02-27 조회수 : 1,179

 

황상호 등 직원 8명 독립운동 참여
윌슨 원장 등 선교사 후원 등 도움

 

광주 기독병원은 광주제중원과 제중원 직원들을 조명하는 ‘3·1운동과 광주제중원’ 사진전을 3월 10까지 병원 로비서 진행한다. /광주기독병원 제공

1919년 광주 3·1만세운동 도화선이 됐던 광주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의 발자취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1919년 당시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였다. 일제 총칼앞에 민족 정신이 처참히 말살됐던 당시 고종의 서거(독살 추정)는 민족의 울분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일제를 향한 저항의식은 만세운동이란 평화적 시위의 들불이 돼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이는 광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광주에선 광주제중원 직원(서기·간호사 등)이었던 황상호, 김안순, 장호조, 최흥종, 김금석, 김화순, 최경동, 홍덕주 등 8명이 중심이 돼 일제 저항의 불씨를 옮겼다.

1919년 3월 10일에 있었던 첫 번째 만세시위에서 주동자 대부분이 체포되자 다음날 제중원 직원 황상호, 장호조, 홍덕주 등은 만세시위를 지속하기 위해 제중원 등사판을 이용해 조선독립광주신문(제 1호) 300부를 발행했다. 여기엔 한일합방의 부당성 등이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이후 제중원 내 환자들은 물론 광주시내 전역에 배포(1919년 3월 13일, 광주교 인근)하기 시작했다. 이로 촉발된 일제를 향한 저항정신은 광주를 넘어 목포 등 전남 여러 곳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조선독립광주신문’은 4호까지 발행됐다. 조선독립광주신문 원본은 1983년 목포 정명여고 선교사 사택 보수공사 중 천장에서 발견됐다. 결국 제중원 직원 8명은 일제에 붙잡혀 수년간 옥고를 치뤘다.

광주 3·1만세운동에 광주제중원 등 기독교인의 참여가 두드러진 이유는 제중원 윌슨 원장(광주 기독병원 2대 원장, 한센병 환자 치료 헌신)을 비롯한 전국 여러 선교사들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광주 기독병원은 광주제중원과 제중원 직원들을 조명하는 ‘3·1운동과 광주제중원’ 사진전을 내달 10일까지 병원 로비에서 진행한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 이전글 다음글 수정 삭제
  • 목록